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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가까워진 돌싱녀가 전날 와이너리에 가겠냐고 묻기에 기분 좋게 가자고 답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와이너리는 가을 단풍구경 때 가고 여름 끝나기 전 바닷가는 어떠냐고 조심스레 묻습니다.
우리의 여행이 특별한 목적을 가진 게 아니니 모든 것이 처음인 이곳에서 바다든 산이든 상관이 없다는 나의 대답을 그녀는 반가워합니다.
햇빛 앨러지가 있는 나를 위해 오후에 출발해서 이른 저녁을 먹고 바닷가를 거닐다 돌아오자는 그녀의 계획에 감사히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점심즈음 다시 연락이 오기를 내가 모르는 당신 친구 2명도 올해 마지막 바다 여행에 동행하고 싶다고 내게 묻습니다.
반대할 이유가 내겐 없기에 그렇게 네 명의 시니어가 1시간 반 거리의 바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주말이어선지 많은 사람들이 여름의 끝자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 Our Food
멋진 이태리 식당(Avenue)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애피타이저(grilled octopus)로 우리의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티초크 샐러드와 메인으로 나온 해물 파스타는 우리의 분위기를 한 층 무르익혀 주였습니다.

돌싱녀가 주문한 생선(?)은 트레이더조에서 2불 50전인데 40불이나 받는다며 비교를 하다가 장소와 서비스가 괜찮다며 와인까지 한 잔 곁들였습니다.  

웨이터가 디저트로 추천한 크램브레와 에스프레소 같은 아메리카노를 마신 후에야 자리에 일어나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큰 바위 얼굴의 희생을 감수하고 인증샷을 남기려고 애쓰는 우리를 위해 옆 테이블 손님이 찍어줍니다 ㅋㅋ

* Our Story
1번 현모양처
소풍 가는 아내를 위해 간식까지 준비해 준 자상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딸을 둔 행복한 그녀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둘째 딸이 일과 결혼해 독신을 선포했답니다.
남의 가정사는 알 수 없으니 좋은 이야기만 듣기로 했습니다.  
2번 도망녀
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오래 참고 견디다가 아들 둘이 장가를 간 직후 무작정 집을 나와버렸다는 또 다른 이혼녀이자 작가인 그녀는 후유증으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지난주에도 저혈압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다녀왔답니다.
그러면서 건강이 허락된다면 유럽 외진 도시로 훌쩍 떠나 한 달이라도 살아보면 좋겠다는 꿈을 꿉니다.
다음 달에 10일 동안 독일 여행이 잡혀있지만 지금 같은 건강으로 갈 수 있을지 의문이랍니다.
3번 돌싱녀
구면인 돌싱녀는 한국에선 고졸이고 미국서 대학을 나와 번듯하게 직장 생활하다 2년 전 65세에 은퇴했답니다.  
이미 알고 있듯이 15년 전 남편의 외도로 용서 없이 이혼했고 지금은 아들 둘의 가정사에 친구처럼 만난다는 시크한 그녀는 자유롭지만 외로움을 슬쩍 흘립니다.
4번 강제 별거녀
기약 없이 손자를 돌보기 위해 옆지기와 떨어져 사는 나의 명명을 아들은 듣기 싫어합니다. 
내가 자원했다나 뭐라나...
암튼 내가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돌싱녀의 욕심과 선택의 귀로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나의 갈등을 그녀들은 이미 겪은 듯합니다.
나처럼 가까이 또 멀리 지내는 손주들을 돌봐준 경험 있는 선배님들의 경험담은 내겐 양약 같습니다.

* Our Beach
작년 부산에서 2달 살기를 즐긴 후 거의 9개월 만인 바다로의 여행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게다가 지금 나를 당장 짓누르는 무거운 바위덩어리 같은 슬픔을 바닷속에 던져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려면 수십 번을 와도 부족할 테지만 말입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새벽마다 걷던 모래사장을 떠올리며 그때 신었던 신발을 신고 갔기에 벗어 들고 한 참을 걸었습니다.
며칠후면 꽉 차오를 추석 보름달을 바라보며 바다 위에 떨어지는 달의 추억을 사진에 담아왔습니다.
추석에 홀로 외로울 옆지기에게 보내라며 현모양처가 담아주셨습니다.
혼자 다닐 땐 내가 사진 속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는데 함께여서 누군가가 흔적을 남겨주니 그것도 혜택입니다.

태양빛이 사라지자 이어 조명이 우리의 발걸음을 밝혀줍니다.

* Enjoy what you have it now!
원초적으로 해가지면 자야 하는 우리의 바이오리듬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운전을 해 준 돌싱녀가 뉴저지 턴파이크에 들어서면서 손발이 말을 안 듣는다며 갑자기 패닉에 빠집니다
65마일 하이웨이에서 40마일로 달리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나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어서 비상등을 켜주고 처음 나온 휴게소에서 내가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뒤에 않은 두 친구 중 현모양처는 남편과 함께 비즈니스를 해왔기에 운전할 기회가 없어 거의 안 하고 살았고,
지난주 응급실을 다녀온 도망녀는 역시 밤운전을 두려워하는 터라...
다행히 우린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지만,
75세쯤 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67살에 더 이상 하이웨이 밤 운전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장 같은 싸인에 그녀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나처럼 역마살이 끼었는지 언제든지 시간만 나면 차를 몰고 바다고 산이고 떠나는 걸 좋아했다며...
이제 더 이상 밤바다를 못 보게 되었다며...
나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밤 여행이 아쉬웠지만,
괜찮다고 이젠 낮에 다니고 밤은 잠에 양보하자고,
위로가 되지 않을 토닥임과 함께 헤어졌습니다.
운전이 아직은 낯설지 않은 내가 하면 된다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당분간 어제의 충격을 시간이라는 마법사가 해결해 줄 때까지...
게다가 아직 난 차가 없는 중이기에...
아들은 테슬라를 사준다지만 옆지기가 한국서 난 사고와 다른 예들을 들으며 전기차는 아직 사지 말라는 충고를 한 터라 지금은 아이들 차를 공유하며 나만의 일상은 뚜벅이로 사는 중이라...
노인이 되어가는 일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지만,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인생이 내게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마시라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로 나는 또 하루를 감사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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