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토요일 밤 아들내외가 친구의 결혼식엘 참석하고 주일 새벽 2시가 넘어 꼬알라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10시 반 뉴욕 ‘요한 대 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려고 했었는데,
피곤한 아들내외를 위해, 아니 이안이를 위해 아침을 먹이고 오전 낮잠을 재운 후 오랜만에 동네 온누리교회에서 11시 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드리는 중 앞 좌석에 앉은 시니어(나랑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한 분에게 마음이 향합니다.
겉모습은 화려(버버리 코트에 루이뷔통 가방을 들었기에)했으나 마음은 무척 가난해 보이는...
예배 끝나고 나오면서 그분도 제게 눈길을 주십니다.
알고 보니 그분도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고 이 교회에 등록한 지도 얼마 안 되는 분이었습니다.
로비에 마련된 간식 떡을 서로 챙겨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그녀의 신앙색과는 맞지 않지만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라 아직 신앙의 길을 걷지 않는 아들을 인도하려고 먼저 등록했다고 합니다.
아들만 셋이고 나보다 세 살이 위인 그녀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커다란 보따리였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가부장적인 남편이 코로나로 죽다 살아나서 장애인이 되었고 급하게 살던 집과 살림을 정리하고 시니어 아파트에 들어가 지금까지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돌보며 사는 중이라는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초라해서 주변의 사람들과의 만남도 없이 우울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남편과 근처에 사는 미혼인 셋째 아들은 신앙이 없어서 그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자유함을 누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아파트가 우리 집을 지나는 길이기에 함께 지나다 보니 우리 집 드라이브웨이에 사돈댁 차가 보입니다.
그분들께 이안이의 재롱을 양보해주고 싶어,
이번엔 내가 그녀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남편의 점심을 위해 집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면 같이 점심을 먹자고 말입니다.
그녀도 그러고 싶었는지 남편의 점심은 차려놓고 나왔으며 지금은 아마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재활 운동 중일 거라고 괜찮다고 합니다.
그녀가 먼저 쌀국숫집을 제안했기에 나도 반가왔습니다.
그리고 10여분 걸어가는 동안, 또 식사하는 내내 그녀는 봇물 터지듯 보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그녀 덕분에 늘 배달만 해서 먹던 쌀국수를 식당(saigon kitchen)에서 먹으니 더 맛있습니다.

그녀의 기준으로는 내가 더 가난하겠지만 먹자고 한 내가 음식값을 지불했더니 그럼 다음엔 당신이 내겠다기에 오늘은 이대로 마무리를 하려고 내가 좋아하하는 아이스크림집(Jinn Ice Cream Rolls)에서 디저트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돌돌 말아 맛을 가미해 이것저것 톱핑을 올려주는 맛보다는 멋으로 먹는 아이스크림을...
그런데 치명적인 건 맛까지 있습니다.

그렇게 들어주기만 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세 시간쯤 지나 보따리를 여미면서,
‘위로가 필요한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권사님(나)을 선물을 보내 줬노라’고 미소를 지으며 헤어졌습니다.
다시 만날 기약은 없지만 전번을 주고받았고 톡도 연 상태이니 언젠가 연락이 오면 만나야 하는 분입니다.  
오늘은 내가 전직이 목회자 부인이었다는 걸 들키지 않았습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그녀의 이름은 글로리아(Gloria)입니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