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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내일로 미루자던 약속의 주인공이 오늘 아침 일찍 더 더워지기 전에 허드슨 강변을 산책하고 점심을 먹자며, 그리고 더우면 실내로 피신하자며 만남을 종용했습니다.
추위보다는 더위에 강한 나도 동감하며 집을 나섰습니다.
오전에 찾은 강변에서 부는 바람은 아직은 그리 뜨겁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길이라며 그녀가 데리고 간 곳은 인적이 뜸했기에 여유롭게 주변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이 땅에서 27년의 짧은 삶을 마무리한 딸을 기리며 조성해 놓은 작은 연못엔 금붕어들이 행복합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다가,  
오래전 사랑하는 딸이 조지 워싱턴 다리에서 생을 마감했던 기억이 떠올라 절절한 슬픔으로 울컥했습니다.  

저 위 다리에서.....
죽을 만큼 힘들었을 그 딸의 아픔과 자식을 먼저 보내고 미친 듯 지냈던 그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그녀는 피자집이지만 파스타 맛이 좋다며 ‘피자 클럽’으로 안내했고 우린 빨갛고 하얀 파스타를 먹으며 그녀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했습니다.  

그녀는 술주정뱅이 아빠 때문에 독신을 결심했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기 위해 간호사가 되어 85년에 이민을 왔답니다.
긍정적 마인드인 엄마를 닮은 혜택으로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왔고,
다른 사람들이 힘들 때 자신은 너무도 편하게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가정과 육아로 힘든 동료들의 빈자리를 불평 없이 채워주다 보니 주변에선 천사로 등극하기까지 했다며 지나온 좋은 기억들을 들춰냅니다.
듣는 내가 부러우리만치 결혼 외에 모든 걸 다 해본 그녀가 이제 가정의 소중함이 조금은 부럽다는 말로 마무리를 합니다.
가지 않은 길은 언제나 아쉬운 법입니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혼자이던 그녀가 이제는 함께 이고픈 걸 보면~
술주정뱅이 아빠 때문에 독신대신 술 안 마시는 남편과 산다는 나의 말에 그녀가 박장대소를 쳤습니다.

이제 다음 주면 치매로 점점 기억이 사라져가는 그녀의 엄마 곁에 머물기 위해 한국에 들어간답니다.
들어간 김에 세 번째가 될 러시아 여행도 하게 된다며,
러시아가 너무도 아름답다며 기회가 되면 러시아는 꼭 가보라고 권합니다.
어디 가야 할 곳이 러시아뿐입니까?
손자가 발목을 잡고 있어 지금은 모두 그림의 떡입니다.

파스타와 팥빙수를 먹은 후 기온이 올라가니 뉴욕을 들어가려던 계획을 내일로 미루고 그 플라자에 있는 시원한 몰에서 쇼핑을 하자고 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쇼핑이 3시간 동안 이어질지 몰랐습니다.
사실 나는 은퇴하면서 물건을 몽땅 정리하고나니 쇼핑이 그다지 즐겁지 않습니다.
사고 싶은 물건도 사야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녀는 잡화상(티제이 맥스와 마이클스)에서 박물관을 관람하듯 작은 소품들을 탐닉하며 즐겼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이라 견디다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이미 7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도 불편했습니다.
살 물건이 있으면 그 물건만 사가지고 나와야 하는데...  
게다가 내일 오후에 다시 만나 저녁도 먹고 링컨센터에서 오페라도 봐야 하기에 오늘은 일찍 헤어질 줄 알았는데...
생활의 정보를 받는 것까지는 고마웠지만 그녀와 나는 삶의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다행히 그녀의 넉넉한 시간이 내게는 없고,
관심사도 서로 다른 듯해 다행입니다.
이제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가 운영하고 싶어 ‘혼자’이길 선호하나 봅니다.

강에서 바다냄새가 나는 건 바다가 인접했기 때문이랍니다.
강이지만 바다에 가까워 밀물 썰물의 영향력도 받는 답니다.
그렇다고 강이 바다는 아닙니다.
허드슨 강변에서의 하루가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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