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그림(감사 70)

1. 내비게이션
점심 약속이 있어 나가는데 조금 늦장을 부리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남편이 운전대를 잡습니다.
나랑 같이 다닐 때는 절대로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인데...
큰길에서 직진만 하면 되는데 습관대로 길치인 남편은 내비게이션을 켭니다.
부인 네비님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 네비가 직진 길을 자꾸 피해 곁길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둘이서 네비에게 왜 그러냐고, 바보라고, 미쳤다고 짜증까지 내면서 직진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남편은 혹시 마누라가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네비의 지시대로 우회전을 했고,
결국 우리는 네비 따라 돌아가느라 약속 장소에 5분 늦게 도착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확인해 보니 식당과 집으로 가는 중간 길이 아예 막혔습니다.
심한 교통사고가 났는지 동네 경찰이 모두 모여 있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 돌아 집으로 오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열하루길의 가나안 땅을 40년의 긴 여정의 광야 길을 가야 했던 것을...
그러나 그 모든 광야 일정이 그들에게 축복이었던 것을...
그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마음을 알게 하시길 원하셨다는 것을...
종국적으로 눈앞의 어려움이 그들의 최악이라고 힘들어했지만 그것이 그들의 최선이었음을...
직선거리로 가면 길이 막혀서 결국은 네비가 시키는 대로 돌아서 가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큰 그림을 경험하게 하시니 감사했습니다.
근시안인 우리는 늘 멀리 보는 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2. 교통사고
저녁을 먹고 앉았는데 교인의 딸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낮에 우리의 통행에 불편을 주었던 그 현장에서 아버지의 교통사고가 났으며 병원으로 이송 중에 소천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 그 교통사고가...
몇 년 전 은퇴한 교인 부부는 시카고의 칼바람을 피해 해마다 겨울철에 한국에서 3, 4개월을 지내다 오시는데,
코비드에도 불구하고 작년 12월에 들어가셨다가 이틀 전에 돌아오셨는데 사고를 당하신 겁니다.
착실하게 노란불에 섰는데 급하게 달려오던 뒷 차가 앞에 서있던 교인의 차를 박았고 그 충격으로 사거리에 밀려 들어서는 바람에 지나가는 차에 다시 박혀서 사고 후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돌아가셨답니다.
6중 충돌로 그 현장 길은 저녁 늦게까지 차단이 되었었고 사건은 아직 수사 중이랍니다.
아 이럴 수가...
함께 해 주는 것 외에 위로의 방법이 없어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부인보다 딸이 더 충격을 받은 듯해 알고 보니,
좀 더 있다 올 계획이었는데 어린 손주가 둘인 딸네의 이사를 도우려고 예정보다 일찍 오게 된 것이 딸에게 깊은 상처가 된 것입니다.
아 딸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딸과 다르게 부인 집사님은 남편이 외상이 거의 없이 깨끗하게 또 고통 없이 돌아가신 건 다행이라며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자녀들과 친척이 모인 것을 보고 집으로 왔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그림 속에 그려지는 하나님의 큰 그림은 또 무엇일까요?

3. 죄책감
주일 예배를 마치고 어제저녁에 만든 음식을 가지고 부인 집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녀는 나보다 6살이 많지만 자그마한 체격이 너무도 귀엽고 예쁜 분입니다.
우리가 시카고로 이사 온 첫 해 봄에 부추꽃을 한 아름 안겨 주시며 꽃병에 꽂아놓고 감상하며 오매가매 하나씩 따 먹으라시던 소녀 감성 소유자이십니다.
펜데믹으로 딸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두 손주를 힘들지만 행복하게 매일 봐주며 지내시다가,
남편의 한국행에 어쩔 수 없이(?) 동행을 하셨고,
한국에 계시는 동안 딸 생각에 맘이 편치 않아 더 머물고 싶어 하는 남편과 심한 말다툼까지 하고 돌아왔다며 펑펑 우십니다.
그리고 올 겨울부터는 남편을 혼자 한국에 보내고 따로 살겠다는 결심까지 했었다며 펑펑 우십니다.
예쁘고 착한 우리 집사님의 트라우마는 또 어떻게...
최근 디트로이트 교인이었지만 스트록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 시카고에 사는 딸네 집에서 요 양하 시디가 소천하신 장로님의 장례와 또 어제 교통사고로 소천하신 교인의 장례를 준비하느라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나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입니다.
내 눈높이에 맞춰 비판의 눈으로만 바라보던 남편이 갑자기 측은해집니다.
곁에 있을 때 서로 잘해 주어야겠습니다.

https://patch.com/illinois/glenview/amp/30531416/northbrook-man-killed-following-multi-car-crash-in-glenview

Northbrook Man Killed Following Multi-Car Crash In Glen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