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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중 황혼 육아와 주말 뉴욕 여행으로 이어지던 단순한 나의 삶이 조금씩 지경을 넓혀갑니다.

* 센터 요가 선생님
뉴저지 주민이 되니 동네 스포츠 센터에서 환영해 줍니다.
수요일 저녁 요가와 토요일 오전 줌바를 하기로 했습니다.
재택근무 중인 며늘에게 이안 이를 맡기고 6시 반 클래스에 맞춰 집을 나서는데 이안이가 이별 대신 울음을 터뜨립니다.
슬프기도 기쁘기도 한 아안이의 울음을 뒤로하고 센터에 도착하니,
일반 스포츠 센터만큼 팬시 하진 않지만 요가는 매트와 좋은 선생님만 있으면 되고 게다가 무료이니 불만 제로입니다.  
아들내외가 미국에서 제일 비싼 동네 재산세를 내고 살기에 내가 대신 그 혜택을 누립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시카고 선생님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엄청 유연하고 센스도 있어서 맘에 듭니다.
끝나고 바쁜 한국 아짐들이 떠난 후 선생님과 통성명과 함께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 마트 캐시어 아짐
운동이 끝나고 센터 건너편의 h 마트를 들러 며칠 먹을 음식을 한 보따리 사 들고 나서며 카운터에서 일하는 상냥한 한국아줌마와도 간단한 안부를 나눕니다.
요가를 했냐며, 아들네가 차 가지고 와서 사가게 조금만 들고 가지 힘들게 많이 사간다고 걱정까지 해줍니다 ㅋㅋ    

* 출근하는 아들 내외 
출근해야 하는 화요일에 재택근무를 하고는 탄력이 붙어선지 오늘도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인 며늘이 아들과 시차를 두고 떠납니다.
아들 내외도 이안이도 서로 아쉬워하는 눈빛을 나누며...

* 혼돈의 할머니
할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긴 하지만 아들내외의 육아 방침을 따르며 도와주는 중인데,
‘10개월엔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아쉬움의 표현이 마치 내가 돌봄 이상의 뭔가를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밤새 라떼 육아 말고 MZ 세대의 현실 육아를 읽다가 늦잠까지 잤습니다.
그렇다고 며늘의 방침을 거스르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내 방침을 얹어봅니다.
유난히 삼키는 걸 거부하는 이안이에게 며늘은 퓌레와 기구를 이용해 초킹을 방지하는 중이지만,
사실은 깔끔한 며늘이 너저분해지는 걸 싫어하는 것도 이유일 수 있습니다.
아침에 며늘이 출근한 후 당근을 삶아서 작게 잘라 놀이 삼아 먹여 봤습니다.
아주 재밌어하고 맛있어도 하니 일석이조입니다.

간신히 잡아서 입에 들어갔는 줄 알고 좋아했는데 손에 남아있는 당근을 보고 의아해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습니다 ㅋㅋㅋ

MZ 세대의 육아는 장비빨이라며 좋다는 건 거의 매일 문 앞으로 배달시킵니다.
먹는데 진심인 이안이를 먹는 걸 이용해 똑똑이로 키워봐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다 똑똑해지는 건 아니겠지만...ㅋㅋ

이 컵은 어제 도착했는데 뒤집어도 물이 안 흐르고 방향도 맘대로 돌릴 수 있어서 최고라는데 써보니 좋긴 합니다.

점심 식사 후 이안이와 놀이를 하다가 내 에너지는 소진해 가는데 여전히 에너제닉한 이안이 덕분에 낮잠 시간에 둘이 같이 뻗었습니다 ㅋㅋㅋ

* 낯선 남자
늦은 오후가 되니 모처럼 선선해지기에 이안이를 데리고 동네 공원으로 나섰습니다.
작은 공원이지만 개들이 노는 곳도 테니스장과 물놀이까지 갖춘 꽤 괜찮은 곳입니다.
이제 날이 너무 뜨겁지 않으면 물놀이도 해야지 싶어 주변을 어슬렁 거렸더니 할아버지 한 분(내 눈에) 다가와 내가 입은 티셔츠를 어디서 샀냐고 묻습니다.
아들 꺼라 잘 모른다고 했더니 그는 그 티셔츠의 영화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대화의 장을 열어갑니다.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 그림의 배경이 blade runner 2049 랍니다. 기회가 되면 봐야 겠습니다.

영화이야기에 이어 ai 문제까지 논하다가,  
주변 공원 시설을 이용하려고 운전면허증으로 패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물놀이 공원은 여기 말고 반댓편에도 하나 있는데 그 정보를 알려주겠다고도 하고,
기타 등등 너무도 친절하게 대화의 맥을 이어갑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 더 친절해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한참 수다 떨다가 헤어질 무렵 곁에 있는 13개월 아기가 손자냐고 물으니 아들이랍니다 Ooooops~
희한하게 미국사람과 한국사람들 사이에는 서로의 나이를 잘못 알아봅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분간이 가지만 4,50대가 넘으면 어른인지 노인인지...
그럼에도 그 남자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한국말로 ‘감사합니다’까지 남기고 멀어져 갑니다.
그들보다 우리는 감정에 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듯합니다.

저 아기가 그 늙수그레한 남성의 13개월 아들입니다 ㅋㅋ

미안한 마음에 이안이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그네가 있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앞으로 종종 이 공원에 산책을 다닐 것 같은데 그분과 인연이 될지 악연이 될지 쬐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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