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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 눈이 많이 와서 오가는 비행기가 계속 연착됩니다.
12시에 출발해야 할 비행기가 도착하질 않아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는 아마 2시반쯤 출발하게 될 거라고 예측만 합니다.
같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곁에 있던 중년 커플과 중년 남자 한 명과 대화를 나눕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티브이에 나오는 코메디언처럼 웃음을 선사합니다.
그러더니 2시간을 이렇게 서서 기다릴 수 없으니 근처에 당신들이 방금 다녀온 '바'엘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술을 못 마신다고 했더니 그럼 물이라도 마시라며 적극적으로 권하기에 호기심에 따라갑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듯 모를듯 코미디처럼 소개합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으니 뭐라고 자신을 포장해도 확인할 길이 없으니 상관이 없다며 ㅋㅋ
노스캐롤라이나 랄리에 살면서 상업 건축 자재를 생산하는 회사 사장과 동업하는 부부가 시카고 근처로 비즈니스 트립을 가는 중이랍니다.
부부는 이전에 이혼한 경력이 있고 각각 두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브랜디드 훼밀리(Blended family)랍니다.
이제 둘은 잘 만났는지 서로가 무척 편안해 보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나도 13년을 살았기에 대화에 참여할 수있었고,
울 아들이 뉴욕 산다는 말에 사장님도 장성한 자녀가 셋이있고 그중 하나 뉴욕 사는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뉴욕 이야기로 곳곳을 누빕니다.
진지한 우리와는 달리, 물론 미국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분들 참 재밌게 삽니다.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 자초지정을 설명했더니,
대뜸 위험하게 모르는 사람이랑 '바'에는 왜 가며 코로나도 위험하고 어쩌고 저쩌고 잔소리를 합니다.
사실이긴 하지만 별로 영향력은 없고 지금의 상황이 늘 진지 모드인 남편에게는 절대로 용납 못할 일입니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해 살짝 알려줬더니 조금은 진지해 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웃다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이제는... 하고 갔더니 다시 4시에 출발하게 될 거랍니다.
아들이 사는 뉴욕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뉴욕편 뱅기는 대부분 캔슬됐다는 사인도 올라갑니다.
이러다가 오늘안에 집에는 가게 되는 건지 불안해집니다.
황당해하며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전에 갔던 '바'로 다시 가서 이번엔 햄버거까지 시켜 먹었습니다.
우리 테이블이 너무도 재밌으니 주변의 테이블까지 함께 입을 모아 '바'가 화기애애 해집니다.
그러다가 왼쪽 테이블에 앉은 청년이 아예 우리 테이블에 조인합니다.
그는 캐나다로 일주일 동안 스노우보드를 타러 간답니다.
부러움에 그럼 취미말고 생존을 위해 뭘 하냐고 물으니 보험회사에 다닌답니다.
그러자 보험에 관한 재밌는 경험담들을 마구마구 쏟아내며 또 한참 동안 식당을 들썩들썩하게 웃습니다.
그러더니 오른쪽에 혼자 맥주를 마시는 중년 여인까지 조인시켜 그녀 삶의 터전인 시애틀 이야기로 웃음이 엮입니다.
그녀 역시 이혼과 재혼을 한 경험이 있어 남편에 대해 할 말이 많습니다.
여자들끼리 나누는 남편에 대한 대화는 국적을 초월합니다 ㅋㅋ
지금은 우량한 모습으로 보잉사에서 일을 하지만 처녀 시절 수영복 모델을 할 정도로 늘씬했다는 그녀에게 우리(?) 사장님이 그럼 한번 일어나서 포즈를 취해보라고 해서 식당이 떠나가라 모두 박장대소를 합니다.
서로의 약점을 승화시킨 자칫 우리에겐 덤덤한 일상 대화를 그들은 해학적으로 이어가니 인생이 즐겁습니다.
짜증스러울 상황을 그들 덕분에 즐겁게 지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웃음만큼 넉넉한 사장님은 내 음식값과 청년의 점심값, 그리고 중년 여인의 맥주값까지 모두 지불하고 뱅기탈 기대로 일어섭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 영화배우처럼 예쁜 부인(미셀)은 빌더들을 관리하는 에이젼트 일을 하는데 내게서 수진이 농장 하우스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명함을 줍니다.
처음에 이름을 물었었지만 기억하기 힘든 외국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사장님(앤디)이 헤어질때 다시 내 이름을 물었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이름은 잊고 한국 할머니로라도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뱅기는 4시에 출발했고 2시간 동안 날아온 시카고는 많이 춥고 이미 어둠이 드리워졌습니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표지판에는 거리도 두고 그룹으로 앉지 말고 마스크도 쓰라고 했지만 안내를 따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천리안을 가진 남편이 걱정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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