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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다녀왔던 삼박사일의 디트로이트 여정은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획했던 시간 속에 짜 넣을 수 없던 만남 하나를 남겨두고 오게 되었고,
그 일이 마음에 부담으로 남아 있다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휘리릭 다녀왔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옆지기가 “갈까?”해서 떠나게 되었고,
일리노이주를 출발해 살짝 걸쳐진 인디아나주를 지나 미시간으로 가는 긴 여정이 이제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게다가 휴가철이어선지 곳곳에 길이 심하게 정체되기도 했습니다.

정체가 길어졌던 곳

이번 방문은 그 분만을 위한 여정이었기에 비밀스레 그 분댁에 저녁 9시쯤 도착해서 12시가 다 되도록 이어지는 대화에 대해 불평할 수 없었음을...
지난 10여 년을 함께 했던 분들...
남편이 마취과 의사로 평생을 일하시다가 우리가 떠날 무렵 은퇴하면서 파킨슨 진단을 받게 되었고,
그러다가 3년 전 차고에서 스트록으로 쓰러지면서 꼼짝을 못 하게 되었는데,
부인의 정성으로 이제는 혼자 천천히 음식도 드시고 지팡이를 이용해 짧은 거리를 간신히 걷기는 하지만  아직은 휠체어에 의지해서 이동해야 하는...
우리가 함께 했던 지난 10여 년의 시간들을 기쁨보다 슬픔을 더 많이 짜주셨던 그분들과의 대화는 다음날 이어가기로 하고 일단 굿나잇을 했습니다.
그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자정에 들어가서 자게 된 우리(그분들)의 숙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입구에서 아무나가 되기위해 기다리던 시간

바로 그분들이 매일 학교처럼 다닌다는 ‘별장 같은 집’이었습니다.
Rolling Hills, Resort lifestyle retirement community
노인이지만 간편한 기구의 도움으로 혼자 움직일 수 있는 분들이 사는 그런...
하지만 실버타운처럼 비싼 보증금은 없고,
감가상각을 따지면 비싸기만 한 것은 아니고,
긴 계약을 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만 다달이 살아도 되고,
방만 있으면 입주와 떠남이 자유로운 새로운 개념의 시니어 하우스입니다.
도움 없이 혼자 거동만 가능하다면...
거동이 힘들지라도 도움 받을 사람이 있으면 도움받으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없는 그분들은 선택한 3 베드룸 숙소에 입주하지는 않고 당신 집에 살면서 저긴 학교처럼 다니며 저곳에서 제공하는 삼시세끼 식사와 극장, 헬스, 도서실... 부대시설을 이용한답니다.
그분들은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해 아침을 드시고 숙소에 올라가 쉬다가 점심 드시고 부대시설에서 활동하다가 저녁을 드시고 7시쯤 집으로 퇴근하며 지내기를 지난 3개월 동안 하셨답니다.
덕분에 환자인 남편의 상태는 좋아졌고 돌보는 부인은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답니다.  
휴양지 스타일... 마치 크루즈 배를 땅 위에 세워놓은 듯한 분위기입니다.
방으로 들어가는 길이...

저 복도 끝에 있는 방

그리고 방의 입구는 개인의 취미대로 장식을 했습니다.
100여 세대중 유태인들이 60퍼센트가 넘게 거주한다고 합니다.

가운데가 그 분들의 숙소

동양인은 우리의 지인과 저곳을 소개해준 둘 뿐 이랍니다.
3개월 전에 들어갔지만 거주는 하지 않기에 여전히 준비 중인 집(?)에서 밤새 안녕을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습니다.
마침 지인은 몸에 장착된 기구를 재 정비하는 날이라 아침을 함께하지 못하지만,
소개해준 분(우리도 이미 아는 분)과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또 다른 분의 짧은 인생사를 브리핑했습니다.
남편과는 일찍 사별했지만 든든한 재력으로 세계 64개국을 여행하면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즐기셨는데,
4년 전 넘어지면서 약해지기 시작해 비혼 딸과 함께 3년을 살다가 그녀를 놓아주기 위해 집을 처리하고 스스로 선택해서 들어왔다며 내려놓는 그분의 화려한 과거를...
제공하는 식사도 여느 고급 식당 부럽지 않습니다.
건강도 책임져주는 그런 음식...

쉐프가 직접 요리해준 베지 오믈릿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깐 숙소에 올라가 쉬다가 점심 모임을 위해 내려갔습니다.
상주하는 분들의 평균연령이 90세라니 반갑지만은 않을 생일맞이한 분들에게 다달이 테마를 정해 축하를 해 준답니다.
이번 8월은 ‘알로하’인데 아직 장식이 덜 끝났다며 사진 찍는 나를 못내 아쉬워합니다.  

드디어 우리의 본 만남인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분들과 지난번 만남이 아쉬웠던, 그리고 그분들의 만남을 위해 애쓰셨던 두 자매와 함께 식당 오픈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모두의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모두라기보다는 그 부인이 주로 말하는 시간이었지만...
지난 10여 년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들어야 했지만...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힘들게 했었던 기억들이 다시 몰려오긴 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은 변하지 않나 봅니다.
건강한 점심을 삼키듯 모든 대화를 꿀떡꿀떡 삼키고 다시 6시간을 달려 우리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기로 샌드위치와 투나 샐러드, 그리고 버섯 스프, 치즈 케이크

애증의 관계를 마무리 짓고 온 자리였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홀가분합니다.
그래서 감사로 시작하는 하루입니다.

후기,
우리 집 마스코트인 꽃기린(Crown of Thorns)을 그분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꽃 말처럼 예수님의 보혈로 그분들의 남은 인생이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환경만 맞으면 일 년 365일 예수님의 보혈처럼 꽃을 피우는 나의 사랑 꽃기린은 그렇게 내 곁을 떠났습니다.
하루 지났는데 보고픈 꽃기린...

새끼는 남겨 놓을걸 그랬나 봅니다 ㅜㅜ

후기 2,
그리운 얼굴들은 기억하고 싶어서...망설이다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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