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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 옆지기가 남겨놓은 일을 처리하고 동네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보낸 후,
길 건너 파리 바게트에서 카푸치노와 커피번을 사들고 광장 벤치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주위를 돌아봅니다.
부지런한 사람들로 광장과 빵집이 북새통입니다.

잠시 후 지팡이를 의지한 한국 할머니인듯한 분이 옆 벤치에 앉으십니다.
광장에서 강아지들과 아기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그 할머니가 내 쪽으로 손짓을 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고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부르신 겁니다.
혼자서 조신하게(?) 앉아 있기에 말동무하자고 부르셨다며 이야기가 하시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연세가 86세이신데 젊어 보이신다니 그런 말을 많이 듣으셨다며,
남편이 떠나 보낸 후 오랫동안 살았던 대궐 같은 집을 정리하고 지금은 원베드 코업 아파트에서 혼자 사신다며,
딸이 둘이었는데 큰딸은 병으로 일찍 보냈고 둘째는 근처에 살면서 혼자 사는 당신을 도와준다며,
과거 뉴욕에서 비즈니스로 돈은 많이 벌었지만 늙으니 이렇게 초라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슬프다며,
나보고 젊을 때(?) 여행 많이 다니라며,
그러면서 당신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절에 다니신다기에 나는 교회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나의 대답과는 아랑곳없이 당신이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원각사 가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곳과 관련된 이야기도 한참을 풀어놓으십니다.
왠지 그곳엔 가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만큼 아주 상세하게...
그렇게 그분의 지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잠깐 딸과 통화하시는 걸 들으니 함께 하기로 했던 식사를 딸네에 일이 생겨 못하게 된 것 같았습니다.

측은지심에 마침 나도 혼자이니 맛난 음식을 대접하겠노라고 했더니 당신은 당뇨, 혈압, 콜레스테롤... 등등 좋지 않아 외식을 하면 안 된다고,
그리고 아침 먹은 지 얼마 안 돼 시장하지 않다며 외로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십니다.
당신은 주말에 여기 나와 앉아 있는 게 일상이니 언제든지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나면 그때 같이 하자는 불분명한 약속을 남기십니다.
비록 몸은 아프지만 죽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죽은 정승보다 살아있는 개가 더 낫다며 삶에 대한 애착이 많으신듯합니다.
애쓰는 마음만큼 몸도 건강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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