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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믹으로 모이는 것이 조심스러워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교회 리더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지 못했습니다.
설 명절을 빌미로 주일 저녁에 올해 새로 선출된 세 장로님 가정을 초대했습니다.
예전엔 옆지기가 초대하자고 하면 내가 힘들어서 툴툴거렸는데,
이번엔 왜 그랬는지 내가 먼저 초대하자고 했더니 옆지기가 의아해합니다.
몸도 안 좋은데 고생을 왜 사서하나... 하는 눈빛으로 말입니다.
어제는 청소로 손발이 부르트고,
오늘은 음식 준비로 또 손발이 부르틉니다.
일을 제대로 못하니 손발이 고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음식 준비 외에 참 많은 일로 분주했습니다.
새벽엔 어제 중부시장에서 사 온 BTS 핸드 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한국은 커피 수요만 일 등이 아니라 커피백 멋지게 만드는 기술도 일 등이라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한국 친구와 톡으로 명절 인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여전히 바쁘고 힘들게 사는 친구를 위로하고 싶어,
소다기브트 앱으로 커피와 티라미수 케이크 선물을 보냈습니다.
받고 기뻐하는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도 미소 지었습니다.
그 친구의 2023년 한 해가 조금 덜 힘들면 좋겠습니다.

오전엔 캐롤 선생님의 스트레치 클래스에 다녀왔습니다.
연초에 일주일에 세 번 간다는 결심이 이미 무너졌고,
오늘은 바쁘니까 괜찮다고 게으름에게 양보하려다 나섰는데... 잘 다녀왔습니다.
먼저 자리 잡은 '엘리자베스'는 내가 한국사람이라니 반가워하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합니다.
놀라는 내게 자기가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너무 좋아해서 인사를 배웠답니다.
최근에 본 드라마는 '사랑의 불시착'이고 두 주인공이 결혼해서 아기까지 낳았다는 이야기도 꿰차고 있습니다.
폴란드 사람인데 김치를 좋아해서 매 끼니마다 먹는다니 놀랍습니다.
오늘도 K-drama와 K-food 만세입니다.
내가 언제 클래스에 오는지 묻더니 자기도 그때 오겠답니다.
언젠가 함께 한국 음식을 먹게 될듯합니다 ㅋㅋ
점심으로 옆지기를 위해 알록달록 건강한 두부 탕수육까지 만들어 줬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뭐든 다 할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날이 춥지 않아 함께 동네 한 바퀴 걷자는 옆지기의 요청도 수락했습니다.
사실은 옆지기는 집에서 기계로 걸을 수 있지만 나를 위해서 걸어주는 겁니다.
그리곤 느지막이 설 명절 음식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음식이래야,
떡만둣국은 비비고 사골 국물과 떡과 냉동 만두에 고명만 준비하면 되고,
잡채는 어제 미리 시연해서 먹어봤고,
녹두전과 수정과만 만들면 됩니다.
수정과는 쉽게 만들었지만,
녹두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 레시피를 따라서만 하는데도 말입니다.
깐 녹두 불려서 갈았는데 너무 곱게 갈았고,
고사리 불려서 삶아서 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숙주 다듬어 삶아 무치고,
돼지고기도 간 고기대신 좋은 고기 사다 잘게 썰어 간하고,
김치대신 깍두기 양념 넣어 합체하는데 장장 5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옆지기의 눈빛이 뭘 말하는지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러게 왜 안 해도 되는 일로 사서 고생하느냐고...
애초에 힘들이지 말고 주문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설 명절 음식 요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나야 원해서 시작한 거지만 의무로 해야 하는 며느리들의 명절 음식 증후군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오늘 밤엔 잠이 참 맛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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