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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Daily Blessing)

용서와 화해(감사 763)

매일 감사 2024. 3. 2. 09:08

삼일절 공휴일에 시내엘 나갔습니다.
백수는 토요일이 삼일, 일요일이 4일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 날을 맞출 수는 없으니...
서로의 말실수로 이어진 섭섭함을 용서와 화해로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게다가 4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사촌 동생을 만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삼일절 시위가 열리는 광화문에서 만나자는 이모의 의도 속에는 내게 당신이 얼마나 애국자인가를 보여주기 위함도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장소인 시청으로 나가는 광역버스가 좌석버스이기에 자리가 없으면 태워주지 않습니다.
12시 점심약속에 맞춰 집에서 출발했는데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여전히 나는 용인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집 앞 버스를 못 타고 다른 정류장으로 이동하며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은 지하철을 타고 뱅뱅 돌아 집 떠난 지 4시간 만에 시청역에 도착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덜덜 떨면서...
이모와의 만남뿐이면 다음으로 연기하겠지만,
이제 곧 미국으로 떠나는 사촌 동생을 만나기 위해 나선 걸음이라 모든 수고를 감수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음을 가면서 알았습니다.
원래 무교동 낙지집에서 점심을 먹고 그 옆 던킨 도넛에서 차를 마신 후 광화문 쪽으로 가서 삼일절 시위에 참여하는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틀 전 먹었던 생굴에 탈이 나서 전날밤 고생을 했기에 이럴 땐 굶식이 답인데 그럼 음식과 사람들 앞에서 불편함을 줄 상황이었습니다.
이럴 땐 모임에 나가지 말아야 하는 거지만,
얼마 전 이모와의 껄끄러웠던 일로 이번 그녀의 초청에 불응하면 노인네가 또 다른 감정소모를 하게 될 것 같아 나의 희생이 도움이 되려는 마음으로 나섰던 겁니다.
늦게 도착한 덕에 식사자리는 피했고,
던킨에서도 커피대신 따뜻한 티로 대신하고 광화문 쪽으로 향하는 데 인파에 밀려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다시 던킨으로 돌아와 창밖의 시위대를 구경만 했습니다.
이모는 애국심으로 매주 토요일 그 시위에 참석한답니다.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흔들어야만 나라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시는 이모는 내게 좌파니 애국심이 없다느니,
간신히 화해된 관계가 다시 아슬아슬합니다.
태평양 건너 사는 이모 딸에게는 투쟁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셨지만,
시청 곁 덕수궁을 방문한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한국의 모습처럼 그녀에게도 데모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특별히 삼일절 행사로 모인다고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시위대로 교통지옥을 불평하는 우리에게 이모는 행사를 위해 도로를 통제하지 않았다고 불평합니다.

저녁까지 먹으려 했던 우린 여전히 속이 불편한 나, 옷깃을 여미는 추운 날씨 그리고 연로하신 이모부의 피곤함으로 일찍 자리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후기,
훗날 이모와의 앙금이 뭐였지? 를 위해...
이모가 울 집을 방문하기 원하셔서 하루 날을 잡아 기흥에서 과천을 아침과 저녁으로 모셔오고 모셔다 드렸던 날이 원인이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이모내외의 결혼기념일이어서 식사는 물론 케이크도 사다가 축하를 드렸던 날이었습니다.
이모의 부부간의 오랜 앙금도 아낌없이 들어드렸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손님 아닌 손님을 위해 집안 청소며 눈 덮인 길을 긴장하며 운전하느라 나의 몸살은 기본이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했는데...
한통의 문자는 내게 섭섭 마귀가 편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모는 팩트를 말씀하셨겠지만,
내게는 마치 울 집에 다녀가시느라 무리해서 그렇게 됐다는 것처럼 들리니...
그래서 사촌이 도착한 후 일주일이 넘도록 연락을 하지 않다가 그래도 사촌은 만나기 위해 연락을 드리니 이번엔 늦게 연락했다며 이모 역시 섭섭 마귀에게 점령당한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서로 하고 나니 이모도 나도 속은 후련하지만 둘 사이엔 살짝 거리가 생겼습니다.
고슴도치처럼 좋아서 가까이 가면 찔리고 그래서 떨어졌다 다시 가까이 가면 찔리는 그런 게 가족인가 봅니다.
나도 너도 모두 말을 좀 더 조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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