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끊임없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 선택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기까지 합니다. 학교, 직장, 배우자...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죽음...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입니다. 예수님이 그 길을 두 행악자와 함께 가십니다. 남을 비판할 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왼쪽의 행악자는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 비판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정의감 때문이지만, 그 정의감에도 불구하고 그도 죽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오른쪽 강도는 왼쪽 강도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하늘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

육신의 몸은 영의 몸이 빠져나가면 그저 한 줌의 재 일뿐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육신은 죽음과 함께 무너집니다. 우리 주변에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한 분은 노년에 병마로 고생을 조금 하시다 95세에 소천하셨지만, 마지막 아픈 몸으로 예배도 친교도 함께 했던 성실하셨던 분입니다. 다른 한 분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자기 낙상을 하여 회복하지 못했고, 팬데믹 이전에 교회를 떠났기에 우린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입니다. 나그네이며 순례자인 우리 모두는 언젠가 본향을 향하여 갑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모두의 그 길이 주님과 동행하는 형통한 길이길 기도합니다.

엄마보다 더 엄마였던 나의 큰언니가 어제(14일) 소천하셨습니다. 암 치료 중 무너진 언니의 건강은 이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게 되었고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언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난 몇 달 투석과 수혈로 매일 주사 바늘을 통해 연명해야 했던 큰언니가 80년의 언니 인생의 여정을 내려놓고 이제 내 곁을 떠나셨습니다. 지난달 한국 방문 마치고 돌아오는 날 언니와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언니도 그 인사의 의미를 알고 힘겹게 겨우 '응'만 하셔서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중 조카로부터 언니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화를 하면서 한번 더 천국의 소망을 나눴었는데... 언니와 마지막 인사를 직접 간접적으로 할 수 있던 것은 다행이었고 보내드리는 게 언니를 위한 길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