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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혼 38년이 지냈지만 누군가는 이제 막 시작합니다.
아이러니하게 우리 결혼기념일에 우리 또래 연인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7월에 결혼을 하는데 결혼식과 피로연을 젊은이들의 방법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하고 싶답니다.
보통 재혼은 가족들이나 친지들과 함께 조촐하게 하는데...
두 분 모두 두 번째 하는 결혼이지만 특별하게 시작하고 싶답니다.
게다가 재력까지 있어 무척 화려한 결혼식이 될 것 같습니다.
딸의 결혼 준비를 해 봐서 아는데 그 모든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엄청 흥분되는 일입니다.

우리 결혼 기념일에 그분들의 러브 스토리를 들으며 구름 위를 걸었습니다.
여자분은 30대에 이혼하고 지난 30년 동안 딸 셋을 훌륭하게 키워낸 씩씩한 여장부입니다.
남자분은 남미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사진과 디자인 계통에서 일을 하다 최근에 은퇴한 젠틀맨입니다.
처음 만나 5분 대화를 해보니 내 입에서 젠틀맨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아들 둘 딸 하나를 잘 키워낸 듬직한 가장으로 4년 전 부인을 먼저 떠나보냈답니다.
그래서 30여년을 혼자서 살아온, 재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던 분이 결혼을 결심하신 듯합니다.
같은 콘도에서, 집사님은 5층에 잰틀맨은 7층에서 30여 년 동안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2년 전 여름 지하 주차장에서 우연히 집사님이 커다란 수박(미국 수박은 혼자들기 정말 힘듭니다)을 들고 가는 걸 보고는
젠틀맨이 문 앞까지 들어다 주었답니다.
집사님은 고맙기도 하고 혼자서 먹기에 너무 커서(미국 수박은 너무 커서 냉장고에 들어가도 벅찹니다) 반을 잘라서 드렸답니다.
그 과정중에 서로가 돌싱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거기까지였는데...
시카고 다운타운에 경비까지 있는 고급 콘도인데 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답니다.
수박 나눔이 있은 후 며칠이 지나 7층으로 갈 우편물이 집사님 박스에 들어왔기에 아무 생각 없이 전달했답니다.
그 우편물이 매우 중요한 거였고 젠틀맨은 답례로 식사를 대접했고 그렇게 함께 식사를 했답니다.
그 이후 두 분 사이에서 이런저런 재밌는 일이 계속 씨줄과 날줄로 엮이다가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답니다.
잠깐 짧은 단편 영화를 본 기분입니다. 미국도 한국도 돈은 늘 문제입니다.
모두 출가한 딸들은 엄마가 혼자 지내는게 안쓰럽고 젠틀맨이 엄마에게 의지가 될 거라는 생각에 찬성을 했답니다.
그런데 젠틀맨이 워낙 돈이 많다보니 그분의 자녀들이 처음엔 결혼을 반대했답니다.
고까운 마음에 그만둘까... 하다가 서로의 재정을 합치지 않는 걸 조건으로 해피엔딩이 되었답니다.
울 집사님도 시카고 다운타운의 빌딩주이니 재력이 뒤지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그 이야기의 배경엔 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오랜 전 젠틀맨 친척 중 한 분이 군대 복무로 한국에 파견 나갔을 때,
한국 여인과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함께 미국으로 왔는데,
그 부인이 아들 하나를 낳고는 그 아들까지 버리고 집을 나가버리고 그 이후 아예 소식을 끊고 살았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그분의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며 다짐하십니다.

암튼 두 분의 황혼 러브 스토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난 30여 년을 혼자 힘들게 고생하며 딸 셋을 키웠고 재력도 남다르게 쌓아온 집사님의 새로운 인생의 장을 축복합니다.

집사님이 더 예쁜데 제가 사진을 잘못 찍었습니다.
한국인이 주인인 일본 식당에서 남편이 시킨 지라시 수시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수시가 몸에서 거부를 해서 연어와 닭튀김 런치 박스를 시켰습니다.
부 분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자기도 찍을 수 있게 해주면 허락하겠노라며 찍어주십니다.
평상시 동그마니 나오던 모찌 아이스크림을 오늘은 고맙게도 예쁘게 세팅을 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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