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감사 343)
할머니의 마음과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사랑하는 손녀가 새벽에 떠났습니다.
직항은 새벽 비행기뿐이라서 잠이 깨지 않은 아이를 잠옷을 입은 채 보냈습니다.
돌아와 다시 잠들기엔 너무도 환해 정리와 청소를 하고 앉아 이제 다시 부부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웬만해선 식빵을 사지 않지만 딸네가 토스트를 만들려고 사다 먹다 남은 뚜레쥬르 식빵과 커피 향으로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워낙 멀리 살다 보니 오면 설레고 가면 많이 아쉽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손녀가 식물원 같다는 거실의 식물들을 정리합니다.
나의 관심보다 따뜻한 창가를 선호할듯해 이리저리 옮겨봅니다.
딸네가 와 있는 동안엔 봄날같이 포근 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함께 했던 5일 동안에 손녀에게 많은 걸 해주려고 나름 애썼는데...
정작 라일리가 기억하는 건 동네 놀이터에서 스릴 넘치게 탔던 미끄럼틀들 입니다.
할머니가 사준 예쁜 드레스보다 편한 놀이 옷을 선호합니다.
뭔가를 하는 것보다 그냥 함께하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고급진 음식보다 할머니의 손맛이 더 좋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시카고 다운타운은 방문했습니다.
작년 성탄절에 왔을땐 표를 못 사서 가지 못했던 꽃동산 라이트 쑈를 올해는 미리미리 예약을 해서 다녀왔습니다.
아이의 시선에 더 많이 맞춰 줬어야 했는데...
라일리가 할머니와의 추억을 오래도록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다육이들을 옮기다 보니 오키드 난들의 꽃대가 올라옵니다.
새 오키드 꽃들이 예쁘고 화려하지만 관심과 상관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주는 세월 지난 오키드들이 고맙습니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나는 또 다른 설렘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