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Daily Blessing)

‘아들’이라는 이름(감사 378)

매일 감사 2022. 12. 27. 00:58

오늘은 16년 전 소천하신 아버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때가 이곳은 성탄절 저녁이었고 한국은 26일 아침이었기에,
추모일은 26일로 지내지만 우리의 기준으로는 성탄절입니다.
한국과 미국 모두 가족들이 연휴로 흩어져 있었지만 어차피 줌으로 만나기게 장소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너무 일찍, 너무 늦어서 모임 후에 아이들은 들여보내고 독수리 삼 형제 내외만 아버님을 기억하는 긴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미팅 5분 전에 급하게 들어가 예배를 드리느라 전체 사진은 찍지도 못했고,
우리끼리 편하게 대화할 때 그나마 기억하고 겨우 한 장을 남겼습니다.

소천하신 울 시엄니는 아들만(?) 삼 형제를 두셨습니다.
그중 옆지기는 장남이기에 전엔 시부모님에게, 이제는 시동생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옛날 그 아들을 그리도 소중히 여겼나 봅니다.
그 소중함 때문에 울 엄마는 48살인 노년에 딸만(?) 셋인 집안에서 나를 낳으셔야 했습니다.
그 시대는 정말 그랬고 우리 시대에도 남아 선호 사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의 첫아기는 아들이고 둘째가 딸인데,
아들을 셋이나 두셨던 시엄니께서 둘째로 손녀가 태어났을 때,
한 세대를 건넌 딸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아니어서 많이 서운했다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단연코 딸을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아들을 낳은 집에서 소식을 주며 빼놓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딸이길 바랐는데..."
부모를 생각해주는 자식이 딸이라서?
아들은 며눌님의 남편이라서?
암튼 요즘 딸을 가진 부모는 사위까지 자식으로 얻는 것이고,
아들 가진 부모는 그 아들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사회적 통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집은 몰라도 우리 집은 그 사회적 통념이 비껴갑니다.
우리 집 딸은 부모가 씩씩(?)하게 잘 살아줘선지 우리에게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반면에 아들은 바쁜 중에도 부모를 많이 생각해 줍니다.
딸은 일과 육아에 힘들고 시간에 쫓겨서 그려려니 하며 위로를 삼습니다.
아들은 육아에 쏟아야 하는 시간을 우리에게 나누는 것이라고 위안을 삼아 봅니다.
그러다 보니 백년손님인 사위는 진짜 백년손님 노릇을 하는 중이고,
'시' 자 들어간 음식조차 피한다는 며눌님은 아들의 의지로 딸보다는 낫게 효도를 합니다.
하지만 아들만 있는 집은 그 아들이 딸 노릇까지 한다는 미담도 들리긴 하니,
아들이든 딸이든 성품과 성향으로 타고난 것이기에,
효도를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우리 부모의 몫인 것 같습니다.
추가로 자녀는 어린 시절 이미 효도를 다 했기에 자라면서 해주는 효도는 보너스랍니다.


그 와중에 옆집 젊은 아빠가 성탄절에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며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유명 인사의 증손이기에 아들이어도 모두가 행복했겠지만,
그 젊은 아빠의 메시지의 행간엔 온 천하를 다 얻은 듯한 숨은 그림이 있습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인 울 손녀의 예쁜 사진 칭찬도 아끼지 않으면서...
암튼 딸이 대세인 거 맞습니다.